반응형

 

 

 

앤드루 카네기는 #스코틀랜드 던펌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세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학교 공부라고는 4년간 받은 것이 전부였던 그는

젊은 시절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방문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집을 들어서자마자 그를 완전히 압도해 버린 것은

벽 한가운데 걸린 그림이었습니다.

 

특별히 유명한 #화가 가 그린 그림도 아니고

오래된 #골동품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는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썰물로 바닥이 드러난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한 척이 쓰러질 듯 놓여있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은 어딘지 우울한 기분마저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바로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The high tide will come.

On that day, I will go out to the sea.)'

 

그림과 글에 압도당한 그는 그 그림으로 인하여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28세가 되던 어느 날 다시 노인을 찾아가서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그 그림을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간곡한 부탁에 노인은 그림을 줬습니다.

그리고 평생 그 그림을 가까이 두고서는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라는 글을

자신의 생활 #신조 로 삼았다고 합니다.

 

 

 

' #포기 하지 않고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다.',

'버티기만 해도 잘하는 것이다.'라고

흔히 말합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썰물 이 있으면 반드시 #밀물 의 때가 옵니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는 법입니다.

 

지금의 나의 상황이 썰물같이 황량하다 해도

낙심하지 말고 밀물 때가 올 것을 기다리면서

노를 젓기 위한 준비를 하는 사람만이

#성공 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누구든지 좋은 기회를 만난다.

다만, 그것을 포착하는 시기를 맞추기 어려울 뿐이다.

- 앤드류 #카네기 -

 

반응형

'좋은글,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태공의 낚시...  (2) 2023.04.14
발효와 부패...  (2) 2023.04.13
음악 만큼 아름다웠던 삶  (2) 2023.04.08
부부사랑의 열쇠  (0) 2023.04.05
피그말리온 효과 : 긍정의 힘  (0) 2023.03.19
반응형
 

프레데릭 레이턴의 '플레이밍 준'(1895). 탁월한 작품성과 특이한 소장처(푸에르토리코의 폰세미술관) 때문에 '남반구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름다운 여성이 누워 있고, 뒤쪽 테라스 너머로 해질녘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보인다. 얼핏 보면 여성은 잠들어있는 듯 하다. 하지만 얼굴의 홍조와 빨간 귀로 미뤄보면 여성이 화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는 척 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금 이 작품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뉴욕에서의 전시는 내년 2월까지 열린다.

“비혼주의자라더니 개뿔이. 결국 이 양반도 똑같은 남자구먼.”

1895년 영국 런던의 한 미술관. 그림 앞에 선 관객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빵’ 터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을 그린 화가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비혼주의자’였거든요. 키 큰 미남인데 그림 실력도 천재적. 돈 많고 성격 좋고 사교성 좋은데다 노래까지 잘하니 수많은 여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나는 예술과 결혼했다”며 독신을 고수하던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 쉰 살 넘은 나이에 늦바람 든 걸까요. 나이 차이가 29살이나 나는 하류층 여성과 동거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연예계 사람들을 만나서 “이 아이를 배우로 써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다닌다네요. ‘그냥 모델일 뿐’이라지만, 이 그림을 보세요. 누가 봐도 화가가 #모델 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뻔히 보이잖아요.

둘이 결혼이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그건 또 화가가 싫다네요. 사람들은 쑥덕거립니다. “하류층 여성이니 데리고 놀다 버리겠다는 심보인가? 여자만 불쌍하게 됐어.” “다 늙어서 주책이야, 정말.” 소문의 주인공은 영국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프레데릭 레이턴(1830~1896).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이 화가의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희대의 ‘엄친아’, 딱 하나 없었던 게…


 

프레데릭 레이턴이 50세때 그린 자화상.

스캔들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레이턴의 이미지는 ‘완벽 초인’이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부족한 게 뭐냐”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지요. 그럴 만도 했습니다. 먼저 태생부터가 #금수저 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러시아 #황제 ( #차르 )의 의사로 일하며 돈을 많이 벌었고, 아버지도 #의사 였죠. 레이턴 본인은 키 큰 미남이었습니다. 게다가 인품도 훌륭했고, 사교성도 좋았으며, 술·담배도 안 했고,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 #독일 ·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며 각 나라의 언어를 마스터했고, 심지어 #피아노 도 잘 치고 노래까지 잘했습니다. 그 많은 재능 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게 그림 그리는 실력이었습니다.

 

23~25세때 그린 '치마부에의 마돈나'(Cimabue's Celebrated Madonna). 작품 높이는 2m, 너비는 5m를 넘는다. 13세기 이탈리아 회화 거장 치마부에(1240~1302)가 그린 그림이 교회로 옮겨지는 장면을 표현했다./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전설의 시작은 1855년 여름 영국 런던 왕립예술원에서 열린 전시회였습니다. 전시 첫날 축사를 위해 전시장을 찾은 빅토리아 여왕. 의례적으로 전시작들을 둘러보며 영혼 없이 “너무 좋네요”를 반복하다가, 한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작품은 당시 25세였던 레이턴이 그린 ‘치마부에의 #마돈나 ’였습니다. 여왕은 그 자리에서 거액을 지불하고 이 그림을 구입했습니다. 여왕의 그날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도저히 안 살 수가 없었다.” 불과 20대 중반에 영국 #화가 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 겁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최고가 된 레이턴. 질투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미술계와 사교계의 스타가 됩니다. 그림 실력과 특유의 친화력, 겸손한 성품 덕분이었지요. 돈을 많이 번 건 물론이고, 34세였던 1864년에는 왕립예술원의 준회원이 되는 명예도 얻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주피터 올림포스’라고 불렀으니 말 다 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뜻도 있지만, ‘최고의 신에 비교할 만큼 완벽한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별명이었습니다.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1869). 이카로스와 그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를 그린 그림으로, 젊은 남성 육체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 남자가 없는 게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배우자 ( #애인 )였습니다. 수많은 #여성 이 눈물을 흘리며 구애해도 레이턴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가 남성의 몸을 아주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사실이 그런 소문을 더욱 부추겼지요.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레이턴의 '파이톤과 싸우는 운동선수'(An Athlete Wrestling with a Python). 실물 크기의 청동 조각이다. 레이턴은 조각 솜씨도 탁월했는데, 이 작품은 이후 전반적인 조각 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테이트 소장

사실은 레이턴이 유일하게 좋아했던 건 여자도 남자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레이턴이 화가가 되는 걸 처음부터 못마땅해해서 아들이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둬도 좀처럼 인정하거나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레이턴은 아버지가 인정할 만큼 성공하기 위해 쉴 틈없이 일했고, 자연스레 일에 중독됐지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엔 이렇게 ‘일과 결혼한 사람’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레이턴도 그런가 보네, 아깝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레이턴이 독신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뒤늦게 만난 평생의 사랑


그렇게 50대에 접어든 레이턴. 늦은 나이에 ‘평생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1881년 동료 화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가, 모델을 서던 22세의 여성과 눈이 마주친 겁니다. 레이턴은 즉시 그녀를 자신의 그림 모델로 고용합니다. 자기 집 바로 옆에 그녀와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을 얻어주고, ‘도로시 딘’이라는 예명까지 지어 줬습니다. 그리고 둘은 항상 꼭 붙어 다녔습니다.

 

레이턴이 딘을 모델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 등장인물을 그린 '데스데모나'(1888). /레이턴하우스뮤지엄 소장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기록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서로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레이턴의 친한 친구들이 편지에서 딘을 레이턴의 ‘아내’라고 지칭한 게 증거입니다. 또 레이턴은 딘이 갖고 있던 배우의 꿈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습니다. 연기 선생님을 붙여 줬고, 공연계 사람들에게 딘을 배우로 써 달라고 부탁했고, 활동비도 내 줬지요.

 

'페르세포네의 귀환'(1891). 신화 속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왼쪽)과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오른쪽 아래)의 재회를 그린 작품이다. 레이턴은 활짝 두 팔을 벌려 페르세포네를 맞이하는 데메테르에 자신을, 지상으로 올라오는 페르세포네에 딘을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언론과 #호사가 들은 ‘곧 두 사람이 결혼할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레이턴은 “ #약혼 하지는 않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그러자 뒷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집안 출신인 레이턴이 딘을 갖고 놀고 있다.” “딘만 불쌍하게 됐다.” “다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 데리고 #인형 놀이를 하는 것 같다.” 별별 조롱과 악담이 쏟아지는데도 레이턴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습니다.

“레이턴이 딘의 곁을 지키면서도 침묵했던 건 사랑하는 여자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의 전기 작가 엘리앗 네게브와 예후다 코엔은 저서 <플레이밍 딘>에서 침묵의 이유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딘이 하류층 출신이라는 한계를 넘어 배우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레이턴의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안 될 일. 지독하게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기혼 여성이 배우로 일하는 건 쉽게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딘이 꿈을 이루는 걸 도우면서도 커리어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레이턴으로서는 이런 식의 처신이 최선이었다는 얘깁니다.

딘은 훗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60살이 넘었지만 레이턴은 내가 아는 가장 젊은 남자다. 그리고 가장 친절하고, 관대한 남자다.”


죽음, 그리고 잊혀지다


 

레이턴이 왕립예술원 회장이 되던 해 왕립예술원에 걸었던 작품 '타래 감기'(1878). 자연스러운 등장인물들의 자세와 우아한 분위기, 아름다운 배경이 일품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미술관 소장

60세를 넘어서면서 레이턴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일 중독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출장을 다니고, 그림을 그렸지요. 사는 방법이라고는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지병인 협심증이 도집니다. 그래도 레이턴은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론 작품의 주 #모델 은 딘이었습니다. 작업실에서 딘은 포즈를 취했고 레이턴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함께 보낸 마지막 몇 달의 시간 동안, 둘 사이에는 별다른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림이 대신 말할 뿐이었습니다.

 

습작 성격의 풍경화 '클리티에'(1890~1892). 일몰 무렵 아폴론(태양신)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님프 클리티에의 모습이 오른쪽 아래에 작게 그려져 있다. /영국 피츠윌리엄 박물관 소장

 

레이턴이 죽기 직전까지 그렸던 미완의 명작 '클리티에'(1895~1896).

이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클리티에는 #그리스 · #로마 #신화 에 나오는 존재로, 태양의 신 #아폴론 을 짝사랑해 태양만 애달프게 바라보다 해바라기가 되어버린 님프(요정) 입니다. 인생의 해는 저물어가고, 석양 속 한 줄기 빛이 마지막으로 비치는 지금, “제발 사라지지 말아 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하는 클리티에. 삶도, 예술도, 딘과의 사랑도 붙잡고 싶었던 레이턴의 애절한 마음이 그림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이 작품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레이턴 은 1896년 세상을 떠납니다. 딘에게는 상속자 중 가장 많은 5000파운드의 유산을 남겼고, 딘의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별도로 5000파운드를 더 남겼습니다. 지금 한국 돈으로 따지면 15억원정도 되는 돈입니다. 하지만 레이턴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딘은 행복한 삶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3년 뒤 병에 걸려 불과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거든요. 여기엔 레이턴에 대한 그리움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레이턴이 죽은 후 딘이 두 번 다시 화가의 그림 모델을 서지 않은 게 그 방증입니다.

 

'음악 수업'(1877). 섬세한 손놀림 표현과 색채, 악기를 만지는 자연스러운 손길, 파란색과 금색 등 드레스의 질감과 색채, 배경 등 그림의 모든 요소가 탁월하다. /영국 길드홀 미술관 소장

그리고 레이턴과 딘은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 갑니다. 공교롭게도 레이턴이 사망한 직후 세계 미술계의 유행이 ‘개성적인 그림’으로 확 바뀌었고, 레이턴 식의 ‘잘 그린 그림’은 좋지 못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동안 이런 풍조가 계속되면서 기사 첫 부분에 나온 명작 ‘ #플레이밍 준’도 한때는 작품값이 액자값보다 저렴해지기도 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좀 생소한 미술관인 중앙아메리카 푸에르토리코의 폰세 미술관이 이 그림을 소장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남의 시선, 뭐가 중요한가


다행히도 1960년대부터 레이턴의 작품세계에 대한 재평가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레이턴은 #빅토리아 시대의 위대한 영국 #화가 로, 플레이밍 준은 ‘남반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세기의 명작으로 대접받게 됐습니다. 레이턴의 연인이자 배우였던 딘에 대한 관심도 커졌지요. 이에 따라 둘의 사랑 이야기도 재조명받게 됩니다.

 

'화가의 신혼'(1864). 레이턴이 딘을 만나기 한참 전의 그림이다. 어쩌면 레이턴은 비혼주의자를 가장했을 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국 MFA보스턴 소장

생전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나이가 많이 차이 난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과 음해를 받았고요. 억울한 일들을 겪고 여러 손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후회는 없었을 겁니다. 서로 함께였기에 언제나 행복했으니까요.

레이턴의 사랑 이야기와 아름다운 작품들을 기사로 소개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규칙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레이턴처럼 타인의 시각이나 편견을 어느 정도 무시해야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있습니다.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방향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용기를 내서 그 길을 계속 가세요. 그렇다면 사랑이 됐든 일이 됐든, 그 길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을 것입니다.

반응형
반응형
 

고인이 된 Breonna Taylor에 대한 그녀의 #그림 은 획기적인 것으로 환영받았고 #예술가 Amy Sherald는 흑인 미국을 묘사한 초상화로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프레셔스 아데시나와 역사, 스토리텔링, 새로운 예술 규범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016년 조지아 태생의 예술가 에이미 셰럴드(Amy Sherald)는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국립 초상화 미술관(The Smithsonian's National Portrait Gallery)의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를 그리는 데 선정되었습니다. 2018년에 완성된 이 초상화는 Sherald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회색 피부 톤, 단순한 배경(이 경우 평범한 파란색 배경), 시터의 성격을 보여주는 패셔너블한 의상으로 묘사된 전 영부인을 봅니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Michelle Smith는 Piet Mondrian의 #기하학적 그림을 반영하는 추상적인 프린트로 Obama가 그림을 위해 입는 하이넥 맥시 드레스를 만들었습니다 . 최근 인터뷰에서 그녀의 Smithsonian 작품에 대해 논의하면서 Sherald는 Obama를 아이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저와 많은 여성들에게 21세기 여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림은 예술가를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들였습니다.

49세의 그녀는 종종 하룻밤 사이에 #성공 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그녀의 #스타 지위는 수십 년 동안 그녀의 기술을 완성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급격한 상승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녀는 20년 이상 일해 왔습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Jenni Sorkin은 2018년 10월 11일 Hauser & Wirth에서 열린 Sherald의 첫 번째 유럽 쇼 카탈로그를 위해 아티스트에 대한 #에세이 를 썼습니다. 런던 제목 Amy Sherald: The World We Make .

 

Sherald는 당시 영부인 Michelle Obama의 공식 초상화를 만들도록 백악관으로부터 의뢰를 받았습니다.

Sorkin은 #Sherald 가 2020년에 Vanity Fair 9월호 표지를 위해 제작된 26세 Breonna Taylor의 사후 초상화로도 유명하며 Forbes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그림"이라고 불렀다고 언급 합니다 . Taylor는 켄터키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같은 해 전 세계적으로 Black Lives Matter 시위를 부분적으로 부채질한 비극적인 이야기였습니다. "Sherald는 이 두 가지 주요 위원회에서 극도의 명성을 얻었지만 첫 번째는 Michelle Obama였습니다."라고 Sorkin은 덧붙입니다. "그로 인해 그녀가 선택되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전국 무대에 올려 놓았습니다."

Sherald는 그녀의 작업의 핵심 부분이 된 기술인 사진과 #초상화 를 사용합니다. 삶에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현재 뉴욕에 기반을 둔 아티스트는 피사체를 촬영하고 수집한 이미지에서 묘사합니다. "사진에서 그림을 그릴 때 자율성의 수준이 있습니다."라고 Sorkin은 말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면 Sherald는 종종 미세한 변경을 쉽게 하여 대상의 묘사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그림자, 옆모습, 액세서리는 화가가 고칠 수 있습니다. 종종 Amy는 모델의 사진을 찍고 나중에 의상 선택을 교체합니다."

내 작업은 캐논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새롭고 광범위한 #스토리텔링 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또 다른 내러티브를 제공합니다 – Amy Sherald

Sherald 자신은 매우 세련된 옷을 입고 있습니다. 10월 초 #런던 의 Hauser & Wirth 갤러리에서 이야기하는 그녀는 흰색 터틀넥, 긴 카키색 치마, 두꺼운 검은색 부츠를 신고 낮은 롤빵으로 머리를 뒤로 넘겼습니다. 그녀의 주제에 옷을 입히기 위해 유행하는 옷을 사용하는 것은 그녀의 연습에 필수적입니다. 여전히 이것과 사진에 대한 그녀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Sherald는 그녀의 작업을 패션 사진과 연관시키지 않습니다. "패션 사진은 예술과 상업이 만나는 장르로서 제품, 초상화, 심지어 순수 예술 사진의 조합입니다." 그녀는 이메일을 통해 BBC Culture에 말했습니다. "저는 시대를 초월한 역사적 계보에 이미지를 고정시키기 위해 맥락적 구조 안팎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herald의 For Love and Country, 2022는 타임스 스퀘어에서 유명한 1945년 사진 VJ Day를 재현합니다.

대신 Sherald는 디지털 매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흑인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고 고양시키는 작품을 만듭니다. 우리가 만드는 세상(The World We Make) 전시회의 For Love, for Country(2022) 그림에서 Sherald는 1945년 Life 잡지에 처음 게재된 Alfred Eisenstaedt의 유명한 사진을 재현하기 위해 그림에서 두 흑인 남성의 위치와 복장을 사용합니다. 이 이미지는 1945년 8월 14일 뉴욕 #타임스퀘어 에서 일본 승리의 날("VJ 데이")에 한 여성을 껴안고 키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Sherald의 그림에서 선원 복장을 한 두 명의 흑인 남성도 같은 장면에서 열정적으로 키스합니다. 방법. 그녀는 퀴어 관계에 대해 "지금이 이것을 더 가시적으로 만들 수 있는 완벽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NN에 따르면, LGBTQ+ 권리는 미국 전역에서 기록적인 수의 반 LGBTQ+ 법안으로 위협받고 있으며, 주 의원들은 올해 LGBTQ+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최소 162개의 법안을 도입했습니다. Sherald는 또한 Eistenstaedt와 같은 이미지가 바로 우리가 미술사와 연관 짓는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내 작업은 캐논이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새롭고 광범위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제공합니다."

Sherald 작업의 중요한 부분은 이미지가 완전히 회색 음영으로 생성되는 기법인 그리자이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처음 검은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치적 진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저는 작품이 주변화되는 것과 그에 대한 대화가 정체성이나 정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Sherald는 피부색 대신 그리자이유를 사용 하는데, 그녀는 "인종에 대해 전복적으로 논평"할 수 있는 "보편적인 품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진의 영향, 특히 Frederick Douglass 의 작업을 통해 [흑인]이 [자신의] 내러티브의 작가가 될 수 있도록 한 daguerreotypes를 요구합니다." Douglass는 #흑인 들에게 #인종차별#고정관념 에서 #자유 로운 표현을 제공하는 사진의 힘에 대해 글을 썼고 사람들이 자신의 #이미지 를 찍도록 장려한 미국 폐지론자였습니다.

 

Sherald의 2020년 Breonna Taylor의 사후 초상화는 그녀가 거부당한 미래의 주제를 묘사합니다.

Sherald의 광범위하고 일관된 작품을 염두에 두고 그녀가 최근 몇 년 동안 Michelle Obama와 Breonna Taylor를 모두 연기하도록 선택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백악관 초상화는 #캔버스#카메라 앞과 뒤 모두 매우 하얗습니다. "오바마 가족은 백악관에 거주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영부인이었으며, 그들 자신은 행정부 전체에서 돋보기 아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극도의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습니다. "백악관의 흑인 여성 미셸 #오바마 를 대표할 흑인 여성 초상화 화가를 선택한 것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표현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Breonna의 엄마는 [그녀의 딸]이 차려입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가족이 그녀를 기억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그렸습니다 – Amy Sherald

대조적으로 Sherald의 Taylor 그림은 주제의 죽음 이후에 그린 첫 번째 초상화였습니다. "Ta-Nehisi Coates가 저에게 초대장을 가지고 왔을 때 저는 누군가를 사후에 그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작업은 실제 모델을 찾는 데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Coates는 당시 Vanity Fair 9월호의 객원 편집자였던 미국 언론인이자 작가입니다. "아직 사용되지 않은 이미지를 찾을 수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Sherald는 비슷한 색상의 배경에 높은 슬릿이 있는 긴 녹색 드레스를 입은 Taylor를 묘사했습니다. "엄마에게 Breonna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최고의 의미에서 디바라고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차려입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함께 어울렸습니다."라고 Sherald는 설명합니다. "

켄터키주 루이빌의 스피드 아트 뮤지엄에서 테일러를 기념하는 2021년 전시회를 큐레이팅한 앨리슨 글렌에 따르면 셰럴드의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상징성이다. "그녀는 아무나 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여동생, 사촌, 친구, 이모, 어머니, 손녀, 딸, 아내가 될 수 있습니다." . "그녀는 약혼자 가 그녀에게 줄 약혼 반지를 포함시켰고 , 그녀가 어떻게 대표되기를 원할지 상상했습니다."

 

아티스트 Amy Sherald가 런던 Hauser & Wirth에서 열린 The World We Make 쇼 오프닝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Sherald는 이전 작품을 돌아볼 때 향수를 느낍니다. "연습을 키우는 것은 여정에 관한 것이며, 일부 그림에는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상기시키는 달콤한 순간이 있습니다."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일기를 다시 보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녀의 새로운 작업은 좀 더 개인적인 손길을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Hauser & Wirth에서 열린 그녀의 쇼에서 Sherald는 He was Meant for All Things to Meet(2022)라는 제목의 가족 구성원으로 만든 첫 번째 그림을 공개했습니다. 라크로스를 하는 그녀의 조카(파트너의 쌍둥이 아들)는 연두색 배경 앞에 라임색 점퍼와 데님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내 파트너와 그의 형제들은 80년대에 Bedstuy와 Flatbush에서 자랐습니다."라고 Sherald는 그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설명했습니다. "

이제 Sherald의 세 조카는 엘리트 사립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그녀의 그림에 묘사된 사람은 학교 최초의 흑인 학생 회장입니다. "내 조카를 보면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 보인다. 그래서 제목이 '그는 만물을 만날 운명'이었다." Glenn은 Sherald가 계속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수년에 걸쳐 Amy의 연습이 정말 강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를 완전히 놀라게 할 수 있었습니다. 두 남자의 포옹 그림은 정말 놀랐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미국의 유명한 저술가이자 #성공학 의 권위자인

지그 지글러가 쓴 책에서 [당신이라는 #도둑 ]이라는

예화가 있습니다.

 

첫 번째 도둑은 #화가 였던 '엠마누엘 닝거'입니다.

그의 죄목은 '#지폐 #위조 '.

닝거는 평소처럼 채소가게에서 20달러 지폐를 건넸지만

그날따라 점원의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고

점원의 손가락에 지폐 잉크가 번지며

그의 죄가 드러났습니다.

 

솜씨가 뛰어난 그는 완벽한 위조지폐를 그렸기에

출동한 경찰 중에서 '진짜 지폐'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을 조사한 결과

다락방에 다량의 #위조지폐 와 그가 그린 #초상화

세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후에 그가 그린 초상화는

한 장당 5,000달로 경매에서 팔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20달러 지폐를 그리는 데

걸린 시간과 #초상화 를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은

같았다는 것입니다.

 

 

 

 

허황된 일들로 시간을 낭비하고

잘못된 곳에 뛰어난 재능을 사용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이처럼 #인생 의 가장 값진 것을

우리는 스스로 도둑질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나를 무너뜨리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낭비한 #시간 에 대한 후회는 더 큰 시간 낭비이다.

– #메이슨 #쿨리 –

 

반응형

'좋은글,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감가는 인상관리... 성공학..  (2) 2023.02.04
황제펭귄의 허들링...  (0) 2023.02.04
그녀가 즐거운 이유...  (0) 2023.01.29
그 분을 사랑합니다...  (0) 2023.01.27
길거리 가수의 인생 역전...  (0) 2023.01.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