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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해진 K-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

◇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화제 ‘연모’는 넷플릭스 10위 진입

성별 편견 맞선 주체적 여성 그려 시청자 고증 엄격해 한계 고려를/2021년 연말,

한국 사극 드라마의 인기가 뜨겁다. <문화방송>(MBC)의 <옷소매 붉은 끝동>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

방영 후 화제성 1위를 이어가며 그간 침체기였던 문화방송 드라마를 확실히 살려낸 일등 공신이 되었다.

<△ 사진:>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 <한국방송>(KBS2)의 <연모>는 최종회 전국 시청률 12.1%(닐슨코리아 조사 기준)를 기록했으며,

넷플릭스에 동시 방영되며 12월 한달 동안 월드 랭킹 10위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 기준) 안에 들었다.

 

'세계인 입맛에도 딱'

◇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 그 이전에는 <에스비에스>(SBS)의 <홍천기>가 판타지를 버무린 설정으로 팬을 모았으며,

최근에 종영한 <티브이엔>(tvN)의 <어사와 조이>도 만듦새 면에서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현재 한국방송(KBS2)에서 방영되는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또한 시청률 반등을 노리고 있다.

소위 퓨전 사극, 혹은 로맨스 사극이라고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 계속 제작되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정통에서 퓨전까지…한국형 사극 로맨스'

◇ 이런 작품들은 역사적 인물과 상황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개별적 차이가 있지만,

한국방송(KBS1)의 <태종 이방원>과 같은 정통 사극과는 확실히 대별되는 점이 있다.

<△ 사진:>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한국방송 제공

○··· <태종 이방원>과 같은 작품들은 정사로 기록된 사건을 묘사하며

역사적 인물의 삶을 전기적으로 따라간다.

인물의 정치적 흥망에 초점을 맞췄기에 작품의 톤은 진지하고, 대체로 스케일이 크다.

퓨전 사극은 가상의 왕조를 배경으로 하거나 실제 역사를 다루더라도

그 상황 안에서 주로 인물의 관계와 감정에 초점을 둔다.

역사극과 로맨스극의 혼합 장르이며, 이를 잘 살려낸 작품들이 인기가 높다.

<홍천기>와 <옷소매 붉은 끝동>은 로맨스 계열의 소설을,

<연모>는 로맨스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다.

장르가 규정하는 양식이 드라마 줄거리상 몇가지 공통점을 드러낸다.

적잖은 경우, 주인공들은 어렸을 때 우연히 만나서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키는

첫사랑 상대가 된다. 성인으로 재회한 뒤,

두 사람의 사랑은 왕조의 정치적 상황과 깊이 연관된다.

주인공들은 왕이 되거나 킹메이커로서 열쇠를 쥐고, 정권 다툼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휩싸인다.

 

'보수적 로맨스와 주체적 선택의 결합'

◇ 주체적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극이 세계적 인기를 얻는 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의 <대장금>이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적이 있다.

<동이>나 <불의 여신 정이> 같은 작품도 있다. <해를 품은 달>과 같은 로맨스 사극도 이미 있었다.

○··· 2021년 인기를 끈 작품들은 로맨스적인 설정을 잘 사용하면서도 거기에 변형을 가했다.

현대의 로맨스는 여성을 주된 소비층으로 삼기에 여성들이 사랑에 빠질 만큼

이상적인 남성상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동시에 현대 여성들이 느끼는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비판과 자립에 대한 욕망도 반영하는 어려운 곡예를 해야 한다.

보수적 로맨스로서 사극의 이점은 여기에 있다.

강하면서도 지고지순한 남성을 만들어내되,

신분제나 성별에 대한 편견에 저항하는 여성 주인공을 그려내면

이성 간의 로맨스에 내재한 여성의 내적 갈등을 편리하게 다룰 수 있다.

 

'드라마 <홍천기>의 한 장면'

◇ <어사와 조이>에서 여주인공 조이(김혜윤)가

조선시대에 스스로 원치 않은 결혼에서 빠져나오는 여성으로 소개된다거나,

<꽃 피면 달 생각하고>에서 로서(이혜리)가 밀주꾼으로

생계를 담당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홍천기>에서 천기(김유정)는 천재 화공이었다.

<연모>에서는 일반적인 남장 여자 로맨스의 설정을 가져왔지만,

휘(박은빈)가 왕이 되면서 신분의 우위를 점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로맨스와 자존의 딜레마를 다루는 방식에서 진전을 이룬 작품이다.

 

'드라마 <꽃 피면 달 생각하고>'

◇ 드라마 포스터. 한국방송 제공

○··· 남자 주인공이 한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왕 중 하나인 정조(이준호)이고,

여자 주인공은 그의 후궁이었던 의빈 성씨(이세영)인 만큼,

드라마는 강한 남성상을 만들어내면서도 궁녀인 덕임에게 독립적 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을 부여함으로써

신분 관계에서 유래한 힘의 불균형을 새롭게 조절했다.

여기에 주인공들의 연기력까지 더해져 시청자들의 감정적 몰입을 끌어냈다.

 

'드라마 <어사와 조이>'

◇ 앞으로의 과제…고증과 픽션 사이 퓨전 사극 로맨스는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감정과 관계까지도 다루기에

정통 사극보다는 상대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크지만,

이 장르의 시청자들이 고증에 느슨하지는 않다.

연초의 <조선구마사> 사태에서 봤듯이,

시청자들은 퓨전 사극이라도 역사 왜곡이라고 여기면 엄격해진다.

<△ 사진:>판타지 사극인 <홍천기>는 원작에서는 세종 때의 인물들이 나오지만,

드라마로 옮길 때는 단 왕조라는 가상의 시대를 내세웠다. 티브이엔 제공

○··· <연모>는 애초에 존재하기 어려운 가상의 왕을 만들었다.

적잖은 드라마가 역사에서 모티브만 따오는 정도로 위험을 피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실존 인물을 다루고 사료를 가져오되,

거기에 픽션을 적절히 가미해서 주제 의식을 살려냈다.

문제는 허구 자체가 아니고, 인물과 역사적 정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의 재현이다.

한국 사극이 세계로 시청자를 넓힌 만큼,

상상력의 가능성과 한계를 고려해야 할 때이다.박현주 작가 겸 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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