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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한 국군포로의 목숨 건 탈북을 시작으로,

2003년 12월, 총 34명의 국군포로가

남한으로 귀환했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가 500여 명인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현재는 그 인원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듭니다.

죽음의 공포를 뒤로 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남한으로 돌아온 용사들...

청춘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킨 용사들이지만

백발의 노인으로 귀환한 국군포로들은

그저 세월과 함께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강희열(89세) 어르신께도 6.25 전쟁은 쓰라린 아픔입니다.

전쟁 당시, 바다 건너 제주까지 총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열아홉 소년이었던 그는 참전을 결심했습니다.

옷고름으로 애써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

잔상처럼 남은 그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전장에 나갔습니다.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리며 포탄이 쏟아졌습니다.

소년에게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자

심장을 조여오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래도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전진해 나아갔습니다.

"전진, 또 전진!"

앞으로 나아가던 소년의 옆으로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한쪽 고막을 크게 다치고 말았고,

청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만 생포되어 북으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전쟁에 참전했던 것이 51년 1월이었는데

포로로 잡혀간 것은 그해 5월이었습니다.

기차는 검은 연기를 뿜으며 북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황해남도 신천의 탄광이었습니다.

전쟁의 부상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갖은 노동을 겪어야 했습니다.

좁은 탄광 안에 움츠리고 앉아서 석탄을 캤습니다.

석탄 가루가 묻어서 얼굴이 까매지고

손에도 굳은살이 박힐만큼 일하고 또 일했습니다.

어찌나 배가 고픈지,

'떡탄'이라고 부르는 찰기 있는 흙을 캐서

씹어 삼키며 굶주림을 버티었습니다.

속이 망가져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괴뢰군 43호'

국군포로들은 늘 이름 대신 그렇게 불리었습니다.

항상 감시의 대상이었으며, 자유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늦게라도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자유를 누리고 싶었습니다.

삶의 마지막은 고향 땅에서 눈 감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고향 땅만 밟으면 핑크빛 미래만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야속하게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탈북 이후 나라에서 지급한 정착금을

사기당하고 말았고 77세라는 노년의 나이에

일을 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가장 빛날 청춘의 나이에 나라를 위해 참전했지만

의도치 않게 북으로 끌려가 갖은 고생을 했고,

목숨 걸고 남한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고 몸도 약해져 힘겨운 삶을

살고 계신 어르신들...

=====================================

조국을, 또 누군가를 원망할 만도 한데

그들은 하나같이 말씀하십니다.

"전쟁에 참전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나의 조국이 위험에 빠진다면

당연히 지킬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 생존해 계신 국군포로 귀환 용사는 14명...

지금이라도 참전용사분들이 생계 걱정을 덜고

노년의 삶을 평온히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6.25 전쟁 대한민국 국군포로' 후원 계좌 =

우리은행 : 1005-703-439088

#6.25 #국군포로 #후원 #대한민국 #참전용사 #노년 #포로수용소 #참전 #전쟁 #용사

#생계 #남한 #북한 #국방부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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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에 대한민국 땅을 밟다..

 

 

 

6.25 전쟁 당시 16개국 참전 국가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워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강뉴부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도왔다는 이유로

공산정권이 들어선 에티오피아에서 평생 가난과 핍박에

시달려왔는데요.

 

지난 2016년부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강뉴부대를

도와온 따뜻한 하루는 생계비 지원, 미망인 후원,

결연아동 사업, 후손 장학금 지원 등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6.25 전쟁 72주년을 맞이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어르신 중 두 분을

한국으로 초청했습니다.

 

 

 

 

7박 8일 동안 참전용사분들과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보여드렸는데요.

특히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 묘지가 있는 부산에서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에티오피아 국기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는데요!

 

70년 전, 한국전쟁 참전 당시 가장 먼저

부산 땅을 밟았던 만큼 어르신들에게는

감회가 새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이 정말 놀랍게 변화했고, 발전했네요.

이렇게 한국이 성장해서 너무도 기쁩니다.

앞으로도 이 땅에 계속 평화가 있기를

제가 죽는 날까지 기도할 거예요.!"

- 벨라체우 아메네쉐와 -

 

7박 8일 일정 중 21일에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초청 행사를 진행하면서 깜짝 손님이 방문해 주셔서

의미를 더했는데요.

 

한국전쟁 당시 17살 어린 나이에

에티오피아 부대에서 폭탄을 나르는 부대원으로 활동하며

벨라체우 아메네쉐와 인연을 맺었던 윤종한 님이

참석해 진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건

이 땅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워 준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강뉴부대의 의미를 되새기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울고 웃었던,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어르신들과 함께한

꿈같은 7박 8일의 여정이 끝났습니다.

우리 어르신들, 에티오피아로 돌아가시더라도

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따뜻한 하루는 단 1명의 강뉴부대 어르신이

살아계실 때까지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올해로 72주년을 맞이하는 6.25.

젊은 세대들에게는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 전쟁이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이 자리가

기성세대의 피와 눈물, 노력으로 일궈진 것이라는 점과

그 땅을 우리가 이어받아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

그것만은 잊지 않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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