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찰스 디킨스


영국 최고의 소설가이자 지금까지도
'천재 중의 천재'라는 평가를 받는 찰스 디킨스는
당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심한 낭비벽으로 인해
결국 재정적인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채무 관계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며 그는 더이상 학교도 다니지 못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디킨스가 12살 되었을 때
그의 가족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디킨스는 학교를 중퇴한 뒤
런던에 있는 구두약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하루 10시간씩 일하며 고단했지만
그는 늘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대신 답답한 마음을
노래로 달래곤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일이 좋으냐'며
한 마디씩 묻곤 했지만 그럴 때면
그는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저는 희망을 닦고 있는걸요."

이후에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을 쓰며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되었습니다.


긍정


긍정적인 사고는 사람을 희망으로 이끕니다.
같은 결과 앞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행복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불행한 결과가 될 테니까요.

결국 긍정적인 태도는 삶의 방향도
긍정적으로 이끌어 줍니다.

반응형

'좋은글,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탄과 다이아몬드  (0) 2022.02.05
장발장의 선택 .. 레 미제라블..  (0) 2022.02.04
유배지에서 피어 난 희망...  (0) 2022.01.30
아인슈타인의 겸손  (0) 2022.01.28
NBA에서 가장 큰 농구 선수  (0) 2022.01.26
반응형
 

정약전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병이 있는데

그건 '절대 절망'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만나게 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정약용,

그의 둘째 형 정약전의 삶을 통해

이를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정약전은 약 15년간 유배 생활을 한 적 있는데,

그의 긴 유배 생활 중 일부는 흑산도에서 생활했는데

그곳에서 근해의 생물을 직접 채집하고 관찰해

'자산어보'라는 책을 씁니다.

이는 어류학에 큰 성과가 되었고

다른 유학자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

연구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을 쓰기까지 깊고,

긴 절망을 느껴야 했습니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흑산도의 위치로 인해

홀로 유배지에 정착하여 살아야 했기에

그가 겪은 외로움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름처럼 아득하고 어두운 섬, 흑산도.

언제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앞날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절망 가운데도

정약전의 삶의 태도는 이전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학문에 정진했고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자산어보'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자산어보

 

문제를 대하는 태도의 현명한 방법 중 하나는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위기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상황에 지배되는 것이 아닌

상황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반응형

'좋은글,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발장의 선택 .. 레 미제라블..  (0) 2022.02.04
희망을 닦는 중...  (0) 2022.02.03
아인슈타인의 겸손  (0) 2022.01.28
NBA에서 가장 큰 농구 선수  (0) 2022.01.26
세 가지 질문...  (0) 2022.01.23
반응형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고 과학적 사고에

혁명을 일으킨 천재 아인슈타인은 평소에 겸손했는데

그는 대자연 앞에서 자신은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아인슈타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 많은 학문과 지식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실험기구에 있던 물에 손가락을 적신 뒤

한 방울의 물을 톡 떨어뜨리며

말했습니다.

"나의 학문을 바다에 비유한다면

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방울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가진 것을 뽐내기 위해 머리를 꼿꼿이 세우면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칠 위험이 커집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사람은 겸손하여 말을 삼가고,

꼭 필요한 경우에 그 지혜를 발휘합니다.

반응형

'좋은글,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을 닦는 중...  (0) 2022.02.03
유배지에서 피어 난 희망...  (0) 2022.01.30
NBA에서 가장 큰 농구 선수  (0) 2022.01.26
세 가지 질문...  (0) 2022.01.23
황새의 희생  (0) 2022.01.22
반응형


1980년대 중반,
NBA에 새로운 역사를 쓸 아프리카 전사가 등장했습니다.
그의 키는 무려 232cm였고 그의 팔 길이는
리그 역대 1위를 달성할 정도로 '거인'의 모습을
한 선수였습니다.

이 선수의 이름은 마누트 볼.
아프리카 남수단에 위치한 딩카족 출신이었고
소를 재산으로 여기는 부족의 문화로 인해 마누트 볼은
학교를 나가는 대신 어린 시절부터 소 떼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리그 농구선수였던
사촌의 권유로 농구를 접하게 되었고
큰 키를 가진 마누트 볼에게는 적합한 운동이었기에
그도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농구 선수로 활동을 하던 중
NBA 행을 제안받아 19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낯선 타지에서 마누트 볼은 NBA 드래프트에
참가 자격을 받기 위해 영어도 몰랐지만 1년간 공부에 전념했고
그 결과 한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NBA 생활이 시작되며
큰 키에 완벽한 수비가 가능했던 그는
프로리그에서 큰 활약을 보였고 그를 보기 위해
전석 매진이 되는 등 인기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점점 경기력이 떨어졌고,
류머티즘성 관절염까지 겪으면서 결국 '방출'이라는
힘든 시기도 찾아왔습니다.

결국 1998년 은퇴를 하게 됐는데
더욱 충격적인 건 바로 6년 뒤 그의 근황이었습니다.
6년 뒤 그의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가 될 정도로
재정난에 허덕였고 하키, 복싱 등 다양한 이벤트를 전전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NBA 선수가 광대로 전락했다'라는
조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의 이런 행보는 모두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누트 볼은 그동안 선수 생활로 번 수백만 달러의 거금은
남수단의 피난민과 기아, 그리고 교육이 필요한 곳에
모두 기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고군분투한 결과,
남수단에도 평화가 찾아왔고 그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많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세웠습니다.




지병이 있었던 마누트 볼은
2010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남수단의 아이들은
그의 희생으로 교육의 기회와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오늘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생겨난 '행복'입니다.

그러니 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항상 감사하십시오.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이 될 것입니다.
반응형

'좋은글,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배지에서 피어 난 희망...  (0) 2022.01.30
아인슈타인의 겸손  (0) 2022.01.28
세 가지 질문...  (0) 2022.01.23
황새의 희생  (0) 2022.01.22
대학교 등록금  (0) 2022.01.20
반응형
 

톨스토이 단편선 '세 가지 질문'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나라의 왕이 인생에서 풀지 못한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두 번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 번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왕은 이 세 가지 질문 때문에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늘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지혜롭다고 널리 알려진 현자를 찾아가

답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왕은 깊은 산골짜기까지 찾아가서야

겨우 현자를 만날 수 있었고 자신의 궁금해하던

세 가지 질문을 말했지만, 현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숲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청년이 나타났는데

왕이 서 있는 곳까지 오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왕은 다친 그를 정성껏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왕에게 가족들이 죽임을 당해 복수하고자

왕을 시해하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궁으로 쳐들어갔다가 병사들에게

다친 것이었는데 모든 사정을 들은 왕은

그에게 용서를 구했고 서로를 용서하며

화해를 하게 됐습니다.

왕은 궁으로 돌아가기 전,

현자에게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현자는 왕의 물음에 답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나에게 중요한 때가 언제인지,

사람은 누구인지,

일은 무엇인지

이제는 고민하지 마세요.

바로 지금 하는 일이며,

지금 함께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인생의 행복이 아닐까요.

반응형

'좋은글,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배지에서 피어 난 희망...  (0) 2022.01.30
아인슈타인의 겸손  (0) 2022.01.28
NBA에서 가장 큰 농구 선수  (0) 2022.01.26
황새의 희생  (0) 2022.01.22
대학교 등록금  (0) 2022.01.20
반응형
황새의 희생



황새는 예로부터 길조(吉鳥)로 여겨졌는데
황새가 군락을 이루면 큰 벼슬을 할 사람이나
만석꾼이 태어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친근한 우리나라 농촌의 텃새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줄어드는 개체로 인해
멸종위기종이 된 황새는 다른 새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황새는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자신의 짝을 보살피는 독특한 새인데
심지어 수컷이 죽으면 암컷은 죽기까지
혼자 사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깊은 부부애만큼이나
더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녀 사랑'입니다.

대부분의 새는 수컷과 암컷이 번갈아 가며
먹이를 물어 오는데 황새는 먹이를 하나씩 물어오지 않고
다량의 먹이를 가슴속에 품고 와서는
목에 힘껏 힘을 줘서 연신 먹이를
둥지에서 토를 한 뒤 새끼들에게 먹이를
골고루 나눠줍니다.

황새의 이러한 행동은 새끼들끼리의
먹이 경쟁을 낮춰 자칫 경쟁에서 도태되는 개체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황새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효'가 있습니다.
다 자란 성채가 된 새끼 황새들은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 병든 부모 황새를 위해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자신의 큰 날개로 쇠약한 부모를
정성스레 보호합니다.

이러한 황새를 보고 로마 시대에는
자녀가 나이 든 부모를 의무적으로 보살피도록 하는
'황새 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부모의 사랑, 효.
이 두 가지는 한낱 미물도 깨닫고 지키는
자연의 섭리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공통된 핵심은
바로 '희생'입니다.

부모의 사랑, 자녀의 사랑
모두 희생을 바탕으로 세워진
귀한 섭리입니다.
반응형

'좋은글,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배지에서 피어 난 희망...  (0) 2022.01.30
아인슈타인의 겸손  (0) 2022.01.28
NBA에서 가장 큰 농구 선수  (0) 2022.01.26
세 가지 질문...  (0) 2022.01.23
대학교 등록금  (0) 2022.01.20
반응형

대학교 등록금

 

저와 동생은 어릴 적 사업을 했던 아버지 덕분에

넉넉한 가정환경에서 남 부럽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인해

쓰러지셨고 결국에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빚을 남기고 떠났기에

세상에 남아있는 저희 형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돈을 갚으라는 사람들로 조용할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더러는 망연자실하게 있는 저희 형제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빚을 탕감해주시기도 했지만

많은 빚을 저와 동생이 벌어서 계속

갚아나가야 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저는 도망치듯 군에 입대했는데

동생으로부터 대학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휴가를 나와보니 동생은 등록금이 없어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친척들마저도 이미 망한 집에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동생은 무작정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예전 종로 허리우드 극장 근처의

한 은행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때마침 문이 열려 있던 지점장실로

동생과 함께 곧장 향했는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더군요.

지점장님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분이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앉으라고도 안 했는데 저와 동생은 자리에 앉아

지점장님의 일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보통 같으면 경비를 부를 만도 한데

지점장님은 그저 우리 형제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무슨 용무로 왔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책상에 동생의 대학 합격증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제 동생이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에 못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빚을 남기고 돌아가셨고,

저는 군에 있어서 도움을 줄 길이 막막합니다.

염치없지만 동생의 등록금을 빌려주신다면

꼭 갚겠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제 이야기를 듣던 지점장님은

대학 합격증을 보시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돈을 찾아오라고 하시더니

그걸 빌려주신 것입니다.

차용증을 쓰겠다는 제 말에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동생의 어깨를 두드려주셨습니다.

훗날 알고 보니 지점장님은

고려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제 동생과 같은

대학 선배였습니다.

같은 학교 선배로서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학을 포기해야 하는 제 동생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처음 보는 우리 형제에게 조건 없는

선의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이후 제 동생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4년이 지난 다음에야

빌린 등록금을 다 갚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안부를 물으며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연락이 끊겼고

저의 사랑하는 동생은 10년 전 지병으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삶의 벼랑 끝에 서 있었던 우리 형제에게

어떠한 조건도 없이 큰돈을 빌려주셨던 지점장님...

아직도 그때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편지를 보신다면 연락이 닿아서

꼭 뵙고 싶습니다.

 

동물 에세이 '살리는 일'의 저자 박소영 작가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살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밥을 먹이고,

고통으로부터 보호하고,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일.

새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더러는

나의 작은 미소가,

나의 작은 손길이,

나의 작은 마음이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힘이나마 누군가를 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살리는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반응형

'좋은글,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배지에서 피어 난 희망...  (0) 2022.01.30
아인슈타인의 겸손  (0) 2022.01.28
NBA에서 가장 큰 농구 선수  (0) 2022.01.26
세 가지 질문...  (0) 2022.01.23
황새의 희생  (0) 2022.01.22

+ Recent posts